사진 밖의 손
《사진 밖의 손》
사랑은 집밥이고, 욕망은 때때로 외식이었다.
도입: 평온한 일상, 그리고 네 남녀의 오랜 우정
화창한 주말 아침,
네 사람이 함께 탄 세단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하며 근교의 온천 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내인 C와 오랜 세월 깊은 우정을 나눠온 K미, 그리고 K미의 남편과 나까지 총 네 사람의 동행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대학 시절의 캠퍼스 동아리에서 시작되어 사회에 진출한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이어져 온 십년 지기 세월의 산물이었다. 주말이면 맛집을 찾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캠핑이나 펜션 여행을 떠날 정도로 두 부부는 서로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겉보기의 다정한 동행과 달리, 각자의 일상과 내밀한 사생활의 결은 저마다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핵심 부서에서 실무를 총괄하며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 C 역시 감각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갈증을 밤마다 뜨겁게 채워 넣었다. 주말 밤이면 침대 위에서 서로의 체온을 탐닉하며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가감 없이 누리는, 불꽃처럼 뜨겁고 조화로운 부부였다.
반면, 운전석 너머로 보이는 K미 부부의 공기는 가라앉은 수증기처럼 텁텁하고 무거웠다.
K미는 유능하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중견 기업의 기획실 과장으로 재직하며 매일같이 야근과 서류에 파묻혀 살았다.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도 그녀를 반기는 것은 가정의 온기가 아니라, 대외 영업과 회식을 핑계로 늘 만취해 들어와 거친 코를 고는 남편의 등짝뿐이었다. K미의 남편은 술을 사랑하는 정도가 지나쳐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기 일쑤였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곧바로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K미는 통통한 체형에 앳된 얼굴을 지녔지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육덕지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그 옷자락 아래로는 남편이 수년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춰본 적 없는 풍만한 볼륨감과 부드러운 살결을 감추고 있었다.
남편의 무심함과 알코올 중독 가까운 습관 속에서, K미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깊은 자괴감과 함께 영혼마저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단단하고 차가운 감옥 속에서, 그녀의 청춘은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개: 여행지의 해방감과 달아오르는 술자리
“자, 도착했다! 다들 내리자고.”
내 목소리와 함께 차량이 온천 숙소의 너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K미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찌든 야근의 피로를 털어내려는 듯 밝게 웃었지만, 그 눈동자 한구석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메마른 그늘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여행이 정해지기 며칠 전, C와 K미는 둘만의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온 C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 사람이 나를 여자로 보지 않으면…… 이제는 정말 우리 결혼생활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K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C는 처음에는 남편도 나름대로 힘든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달랬고, 오래된 부부가 언제나 처음처럼 뜨거울 수만은 없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술에 취해 돌아와 등을 돌리고 잠드는 남편 옆에서, 자신이 점점 여자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변해가는 것 같다는 K미의 말에는 더 이상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C가 끝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일뿐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을 잠자리에서 아내 C가 이야기했을 때, 묘한 충동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친구 사이, 허물없는 내 친구 K미의 남편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시캬 좀 잘 해줘라 시캬' 정도...
우리는 전에도 여러 차례 함께 캠핑을 다니고 온천 여행을 떠난 사이였다. 혼욕탕에서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마주친 적도 있었고, 계곡에서 물놀이하다 서로의 몸을 민망할 만큼 가까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친구 사이에서 허용되는 무방비함일 뿐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손을 뻗거나 그 이상의 경계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낮에는 아기자기한 공방과 풍경 좋은 산책로를 돌았다. C와 K미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소녀처럼 웃었고, K미의 남편도 드물게 맨정신으로 대화에 몰입하며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기울 무렵, 우리는 숙소에 딸린 야외 온천으로 향했다.
남탕과 여탕은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은 돌담과 대나무를 엮어 막아 놓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소리와 말소리는 담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담 너머에서 C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배 안 고파요?”
“어어, 배고파.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있어요? 얼른 나와요.”
“응, 그래. 금방 나갈게.”
여탕 쪽에서 K미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C가 무언가를 속삭였고,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물결을 넘어왔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주문해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각종 회와 구이, 따뜻한 국물 요리 사이로 사케와 맥주, 양주가 빼곡하게 놓였다. 목욕을 마치고 난 뒤라 모두의 얼굴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우리 오랜만의 여행을 위해서 잔 부딪치자고! 마셔, 마셔!”
K미의 남편이 가장 먼저 잔을 들었다.
술자리가 시작되자 C는 몇 차례 K미 남편과 K미 사이를 이어보려 했다.
“이 회 K미가 좋아하잖아요. 당신이 좀 챙겨줘요.”
C가 접시를 밀어주자 그는 회 한 점을 집어 아내의 앞접시에 놓았다. K미는 잠시 남편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C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봐. 이렇게 챙겨주니까 얼마나 좋아.”
그러나 K미의 남편은 아내의 표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자신의 잔부터 채웠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서너 잔으로 늘어났다. C가 처음 몇 번 술을 따라준 뒤에는 그가 아예 병을 자기 곁으로 가져다 놓고 빈 잔을 거듭 채웠다.
“그 사람 술 너무 많이 마시게 두지 마. 한번 취하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
K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은 운전할 일도 없잖아. 그래도 조금만 천천히 마시게 하자.”
C가 술병을 한쪽으로 밀어두려 했지만, K미의 남편은 괜찮다며 다시 끌어당겼다.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언제 마음 놓고 마셔.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K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욕 후의 열기와 술기운이 겹치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느슨해졌다. 처음에는 단정하게 앉아 있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졌고, 서로의 옷깃과 소매도 편한 모양으로 풀어졌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서로의 잔과 접시를 챙기는 손길도 한결 스스럼없어졌다.
K미는 내 앞에 놓인 접시가 비면 말없이 음식을 덜어주었다.
“○○ 씨도 좀 먹어요. 아까부터 술만 마시잖아요.”
“나보다 본인부터 좀 먹어요.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않았잖아.”
내가 고기를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자 K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희미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맞은편에서는 C가 느슨하게 풀어진 가슴골을 여미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피부에 아직 붉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K미의 남편의 눈이 가슴결을 슬쩍 파고드는 것을 흘깃 바라볼 수 있었다.
K미의 남편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C씨는 피부가 참 곱네.”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예요?”
C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렇다는 거지. 뽀얀 사골 국물을 닮았는데, 붉은 대추 하나 떠 있다고 해야 할까? 딸꾹!"
"어머 어머 미쳤어"
그는 대수롭지 않은 장난이라는 듯 손을 뻗어 C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C의 웃음이 순간 굳었다. 곧바로 손을 빼면서 먼저 K미를 바라보고, 뒤이어 내 눈치를 살폈다.
K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만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분노라기보다 오래 참고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금이 간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앉은채 궁둥이를 슬쩍 일으켜, 내 곁으로 옮겨 앉았다. 어깨가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게 C가 좋으면…… 오늘 남편 바꿀까?”
식탁 위의 소리가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K미 자신도 방금 내뱉은 말에 놀란 듯했다. 입술 끝에 어색한 웃음을 걸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술잔을 들어 보였다.
우리는 그것을 건배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는지도 몰랐다.
하나둘 술잔이 올라갔다.
그때 C가 K미를 바라보았다.
말려야 할지, 웃어넘겨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처럼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친구의 얼굴을 살피고, 나를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C는 천천히 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바꿔.”
다시 정적이 흘렀다.
K미의 남편이 C와 자기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C씨가 내 마누라인가?”
나는 입에 머금었던 술을 그대로 뿜고 말았다.
당황한 내 모습에 모두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C는 휴지로 식탁을 닦으며 나를 타박했고, K미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K미의 남편은 자신의 농담이 대단히 성공했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크게 웃었고, 누군가는 웃음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술잔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묘하게도 각자의 파트너가 바뀌어 있음을 직시해야 했다.
더 이상 그 말을 다시 꺼낸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없었던 말이 된 것도 아니었다.
몇 순배가 더 돌자 K미의 남편은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 팔을 괸 채 꾸벅꾸벅 졸더니, 끝내 누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K미, 너 요즘도 야근 많아? 얼굴이 너무 축났어. 이것 좀 먹어.”
C가 걱정스러운 듯 음식을 집어주자 K미는 씁쓸하게 웃었다.
“말도 마. 팀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회사에서는 서류 보느라 눈이 빠지고, 집에 가면…….”
말끝을 흐린 K미의 시선이 옆에서 꾸벅거리는 남편을 향했다.
조금 전 자신의 친구에게는 피부가 곱다고 말하며 손까지 뻗었던 남자였다. 그러나 정작 아내가 자리를 옮겨 다른 남자의 곁에 앉았을 때는, 질투도 관심도 드러내지 않은 채 술잔만 비웠다.
K미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다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 눈에는 분노를 넘어선 지독한 권태와 애처로운 허기가 담겨 있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온기를 나눈 기억은 이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남편에게 자신은 더 이상 밤마다 안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같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잠드는 생활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반면 조금 전 내 곁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느껴졌던 짧은 긴장과, C가 “그래, 바꿔”라고 대답하기 전 흘렀던 침묵은 아직 식탁 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위기: 깊어가는 밤, 그리고 혼욕탕으로 향하는 발걸음
밤이 깊어지자 술자리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누군가 마무리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K미의 남편이 식탁에 팔을 괸 채 완전히 고개를 떨구고, 비워진 접시 사이로 대화가 하나둘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끝난 것뿐이었다.
거실에는 먹다 남은 회와 식어버린 국물, 반쯤 비워진 술병이 뒤엉켜 있었다. 엎어진 잔 주변은 끈적한 술로 번들거렸고, 공기에는 음식 냄새와 사케 향, 목욕을 마친 네 사람의 체온이 무겁게 섞여 있었다.
“당신은 먼저 이 사람 좀 눕혀줘요.”
C가 K미의 남편을 가리켰다.
나는 그의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K미도 반대편에서 남편의 허리를 받쳤다. 술에 취해 힘이 완전히 빠진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보, 정신 좀 차려봐.”
K미가 남편의 얼굴을 두어 번 살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렸다.
"아휴... 이이가... 오늘 따라 왜이래... 정말..."
우리는 그를 거의 끌다시피 방으로 옮겼다. 내가 미리 깔아둔 이불 위에 눕히는 순간, 남편의 체중이 쏠리며, 옆에서 몸을 숙이던 K미의 유카타 앞섶이 활짝 벌어졌다.
목욕 후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뽀얀 살결이 옷깃 사이로 두 젖가슴이 보름달 마냥 훤하게 드러났다.
"이이가 정말... "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장면은 불과 한순간이었지만,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눈에 남았다. 아니 그전 혼욕탕에서 이미 봤었다. 육덕진 몸매의 커다란 젖가슴 그리고 팽팽하게 몽우리져 오똑하던 유두와 잘록한 허리아래 풍만하던 엉덩이와 그 사이에 자리잡은 앙증맞은 검은 음모를... 봤었다.
남자라면 한번 안아보고 싶은 그런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몸, 몇번을 봤지만 그때마다 솟구치는 내 자지를 아내가 물속에서 움켜쥐고는 음탕하게 나를 봤었던 그때의 시간들...
K미는 흐트러진 남편의 다리를 이불 안으로 밀어 넣고 한동안 그 얼굴을 자신의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을 드러낸 옷깃을 살짝 여민채..., 조금 전 C의 손목을 잡으며 웃던 사람과,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코를 골기 시작한 사람이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됐어요. 이제 우리가 정리할게요.”
거실에서 K미의 엉덩이 쪽을 바라보던, C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을 나온 나는 우리 쪽 방에 이불을 폈다. 펜션은 방 두 개와 작은 거실, 조그마한 부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였다. 방문에는 얇은 일본식 창호지가 덧대어져 있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옆방과 거실로 새어 나갈 것 같았다.
내가 잠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C와 K미는 거실에 남아 술상을 정리했다.
접시가 포개지는 소리와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두 여자는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한쪽이 무엇인가 건네면 다른 쪽이 짧게 웃었고, 다시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러다 거실에서 갑자기 작은 웃음이 터졌다.
“왜?” K미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냥.” C가 대답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참듯 킥킥거렸다. 무엇이 우스운지 설명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웃음은 금방 잦아들었지만, 술자리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어떤 문장이 아직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오늘 남편 바꿀까?’
나는 이불 위에 앉아 혼자 피식 웃었다.
장난이었을 것이다. 술이 조금 과했고, K미가 남편에게 화가 나서 홧김에 던진 말일 뿐이었다. C의 “그래, 바꿔”라는 대답도 친구의 농담을 받아준 것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 옷깃 사이로 스쳤던 K미의 뽀얀 살결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지우려 할수록 영상은 더 또렷해졌고, 그 위로 술자리에서 내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던 모습이 겹쳐졌다.
“뭘 그렇게 혼자 실실대고 있어요?”
방문이 열리며 C가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냥.”
“그냥?” C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가왔다. 내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이불 위에 한쪽 무릎을 올리고 내 앞에 앉았다. 사타구니 안쪽, 하얀 팬티스 슬쩍 보인다. 내 눈이 사타구니를 쫒을때, 아는지 모르는지, 유카타를 여미는 것인지 더 벌리는 것인지, 끝자락을 잡고 몇번을 씨름하더니,
내 뺨을 짚는 손이 서늘했다. 설거지를 찬물로 했나보다. 뜨거워진 얼굴에 닿은 차가운 감촉 때문에 순간 어깨가 움찔했다.
“무슨 생각했는지 말해봐요.” C는 내 표정을 가만히 살피더니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
“수상한데.”
밖에서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C와 나는 동시에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K미가 화장실을 오가는 모양이었다. 나무 바닥을 밟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우리 방문 앞을 지나갔다가 잠시 멈춘 듯했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곧 다시 발소리가 이어지고, 맞은편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는 K미 남편의 무거운 코골이만 얇은 벽을 넘어왔다.
“이제 조용해졌네.” C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작게 말했다.
그 말이 단순히 바깥이 조용해졌다는 뜻인지, 다른 무언가를 확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C의 차가운 손이 다시 내 목덜미를 감쌌다. 나는 그녀를 끌어당겼고,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웃음기는 곧 따뜻한 숨결 속으로 사라졌다.
낮 동안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인지 C의 반응은 평소보다 빨랐다. 입술이 닿자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고, 손끝이 내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처음에는 서로 숨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움직였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두려워, C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삼켰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자, 억누르던 숨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으음…… 조금만…… 천천히…… 좋아.... 깊어... 흑...” 낮은 신음이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나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이불이 출렁일 때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가슴에 부딪히고, 땀에 젖은 피부끼리 미끄러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C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이불을 쥐어짜며 어떻게든 소리를 가두려 애썼다.
하지만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그 억누름은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허리를 세게 밀어 넣으며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반복해서 자극하자, C의 몸이 활처럼 휘어올랐다.
“아…… 안 돼, 나…… 지금……!”
“헛... 끄윽... 음... 악... 몰라... 히이이익~!“
짧은 비명이 이불 사이로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얇은 창호지를 뚫고 복도로, 그리고 옆방까지 스며들었을 것이다. 순간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키려 했지만, 이미 한 번 터진 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허리를 떨며 절정에 다다르는 동안, 그녀는 내 이름을 낮게 부르며 계속해서 작은 신음들을 흘려보냈다.
거의 사십 분 가까이 이어진 행위가 끝난 뒤, 우리는 녹초가 되어 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 안에는 아직 서로의 거친 숨소리와, 땀에 젖은 피부의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문밖에서 아주 미세하게 뒤척이는 듯한 소리가 스며들었다.
뭔가 스치는 가벼운 바스락거림, 그리고 누군가가 숨을 참았다가 길게 내쉬는 한숨이…… 창호지 너머로 조용히 흘러 들??











